人要多走路(1)
산자여, 걸어라
그렇다. 머리에 쥐가 날 때면 발을 움직여야 한다. 지끈지끈 머릿속이 쑤시기 시작할 땐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니기가 으뜸이다. 누렁이 앞세우고 겨울 논두렁길을 걸어보라. 빈들에 나가보라. 구부정한 논둑길은 아버지의 어깨처럼 편안하다. 모든 걸 내줘버린 들판은 허허롭다. 알곡을 털어낸 볏짚들도 넉장거리로 누워있다. 새들은 그 지푸라기 사이를 헤집으며 낟알을 찾는다. 해질녘 아이 손잡고 동네골목길 한번 어슬렁거려보라. 가슴에 강 같은 평화가 물밀듯이 밀려온다. 골목마다 구수한 된장국에 매콤한 찌개 냄새. 여기저기 개 짖는 소리. 삐이꺽 대문 여닫는 소리. 사람 사는 게 다 그렇구나. 문득 나는 누구인가 난 왜 늘 이 모양인가하는 생각들이 다발로 피어오른다.
사람 몸은 원래 부드럽고 울퉁불퉁한 땅에서 잘 걷게끔 만들어졌다. 평평하고 딱딱한 곳은 안 맞는다. 아스팔트를 걸으면 몸에 충격이 온다. 잔디밭이나 흙길이 좋다. 걸으면 상상력이 날개를 단다. 아이디어가 번쩍 떠오른다. 실내에 앉아서 토론을 하면 논리가 앞선다. 조용하고 초록으로 둘러싸인 숲길이 좋은 이유다. 서류더미와 씨름하는 회사인간들은 일하다가 막히면 잠깐 길거리를 걷는 게 효과적이다. 보통 2시간 일하고 20분정도 걷는 게 알맞다. 휴식시간에 커피나 음료수를 마시며 수다 떠는 것보다 낫다. 글 쓰는 사람들도 글이 막히면 메모장과 볼펜을 들고 밖으로 나가 걷는 게 효과적이다. 다리를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뇌가 활성화된다. 뇌로 가는 에너지 공급이 활발해지고, 뇌 호르몬 분비가 왕성해진다. 스트레스 쌓일 때도 마찬가지. 약간 먼 거리를 빠른 걸음으로 걸으면 씻은 듯이 사라진다. 부하직원을 꾸짖을 때도 함께 나란히 걸으면서 하면 당사자 화가 덜 난다. 칭찬은 안에서 하고 질책은 밖에서 해야 하는 이유다.
걷기는 두 발 중 한발이 땅에 붙어있다. 하지만 달리기는 두 발이 모두 허공에 뜨는 순간이 있다. 걷기는 체중의 1.21.5배의 충격을 주지만, 달리기는 체중의 35배의 충격을 준다. 그 만큼 무릎이나 허리에 부담을 준다. 걷기는 시간을 일부러 낼 필요도 없다. 고층아파트나 회사를 오르내릴 때 계단으로 오르내리면 된다. 버스나 지하철로 출퇴근 하는 경우엔 목적지보다 한두 경기장 앞에서 내려 걸으면 된다. 걸을 땐 만보계, 심박수측정기, 물통이 필수. 요즘엔 속도, 시간, 거리, 칼로리 소비량까지 표시되는 만보계도 나와 있다. 걷기를 마치면 발을 높이 들어 피를 역류시켜주는 게 좋다. 발바닥을 문질러주거나 엄지손가락으로 눌러주고, 발가락을 하나씩 가볍게 잡아당겨 줘도 피로가 풀린다. 냉수와 온수를 번갈아가며 5,6회 정도 족욕을 해도 효과적.
찬바람을 헤치고, 힘차게 나아가는 겨울철 걷기는 정신을 번쩍나게 한다. 냉수욕하는 것 같다. 서울 남산 길, 경희궁 안쪽에서 정동을 거쳐 덕수궁 돌담으로 이어지는 길, 일산 호수공원길, 남한산성 길, 문경새재나 대관령 옛길, 동강을 따라 정선에서 영월까지 가는 길, 월정사에서 상원사로 이어지는 흙길, 섬진강 따라 걷는 구례하동 길. 눈이 오는 날, 그 길 위에 서서, 아득한 소실점을 바라보면 내 삶에 소름이 돋는다.
걷기는 한순간 자신의 몸으로 사는 것이다. 근육을 써서 세상의 파도와 맞서는 것이다. 걷다보면 아, 내가 살아있었구나라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세상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 걷는 인간과 죽어도 안 걷는 인간.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
位律師廻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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